삼국지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 ] 1

사이다7up 2020. 12. 6. 23:52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 1부] 제1화


수많은 영웅이 탄생한 삼국시대는
복잡미묘한 역사 시기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넘쳐 남니다.
정사와 야사의 소설뿐 아니라
연극의 단돌소재이기도 합니다.
각시기마다 평가가 다르며,
작품마다 묘사가 다릅니다.
시비와 진위 승자와 패자에 대해서도
의견이 하나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중텐 교수가 평민의 입장에 서서
현대적인 시각으로 삼차원구성을 이용해
이야기를 통해 인물을 논하고 인물을 통해 역사를 논하며,
역사를 통해 문화를 논하고, 문화를 통해 인성을 논합니다.
이중텐 교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시대의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삼국역사의 여러 이미지를 정리해 줄 겁니다.
삼국시대를 재조명하는 값진 시간이 될 것입니다.
창강은 동쪽으로 흐른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삼국시대에 대해 강의하겠습니다.
삼국시대는 하면
가장 먼저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떠오를 겁니다.
또 적벽대전하면
소동파의 대작 ‘적벽회고’가 떠 오를 테고요.
‘동쪽으로 흐르는 창강의
거친 물결이
천고 풍류 인물의 흔적을 쓸어 내네,
옛성의 서편을 사람들은
삼국시대 주랑의 적벽이었다고 말하네
난석은 하늘을 뚫고 성난 파도는 둑을 할퀴며,
회오리는 눈보라를 일으키네.
그림 같은 이 강산에서
얼마나 많은 호걸이 활약했던가 !!
호방함이 물씬 풍기는 소동파의 적벽회고에서는
삼국시대의 영웅적인 기개와
낭만적인 정서가 느쪄집니다.


이 ‘적벽회고’는
소동파가 47살 때
호북의 황주 적벽에서 쓴 겁니다.
황주의 적벽은 주유의 적벽이 아닙니다. 
소동파도 이점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옛성의 서편을
사람들은 주랑의 적벽이었다고 말하네’라고 쓴 거죠.
누군가 정말 그렇게 말한 겁니다.
하지만 그는 작품으로까지 남겼어요.
황주의 적벽에 앉아
힘차게 흐르는 창강의 모습을 보던 그는
부지불식중에 삼국시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떠올린 겁니다.


주유에 대해 말해보죠.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손권과 유비 연합군의 총 지휘자였습니다 주유 자는 공근 (175 – 210)
당시 그는 34살이었습니다.
강동의 미녀 소교를 아내로 맞은 지
이미 10년이 지난 후였기에
소교를 아내로 맞은 해가 아닙니다.
하지만 소동파가 소교와의 혼인과
적벽대전을 함께 연결 지은 이유는
멋스럽고 호방한 주유의
유장의 풍모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장 : 선비인 장수)
그래서 이렇게 쓴 것입니다.
‘우선을 부치고 윤건을 쓰고’
‘담소를 나누는 사이 적들의 전선은 재가 되었다.’
우선은 깃털로 만든 부채입니다.


윤건은 푸른실로 짠 두건이죠.
이런 복장은
당시의 우아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어요.
알다시피 한대 당시
귀족과 관리는 관모를 써야 했습니다.
높은 관모에 풍성한 옷을 입었어요.
높은 관모와 넓은 허리띠를 매야 위엄있어 보인다고 여겼죠.
하지만 후한 말에 이르러
귀족과 관리가 멋을 부리면서
평민의 복장을 입기 시작했어요.
두건을 쓴 겁니다.
만약 어떤 장수가
평민의 복장을 입고 우선을 부치고 윤건을 쓴다면
유장의 풍모가 느껴지겠죠.


우리가 알고있는 주유는
이런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적벽대전 당시의 상황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적벽대전이 시작될 무렵,
조조는 중국 북부를 통일시켰습니다.
조조는 난세의 영웅입니다. 조조 자 맹덕 (`166 – 220)
환관의 손자로 태어나 난을 평정하였으며,
동탁을 토벌하고 원술을 격파하고
여포를 죽이고 장수를 항복시켰으며,
원소를 멸함으로써
중국 북부의 통치권을 획득했습니다.
..
그 후 그는 남하하기로 결심합니다.
건안 13년
순조롭게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강동으로까지 진격하기로 하면서
손권에게 결투장을 보냅니다.


‘난 수군 80만명을 양성했으니
장군과 오에서 회전하고 싶소’ (회전 : 일정지역에서 대규모 병력이 집결하여 전
투를 벌임)
조조는 천하를 통일하고 제후를 규합하기 위해
이와 같은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하지만 손권 집단에 있어서
위기일발의 가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