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 7

사이다7up 2020. 12. 13. 18:13

그에 반해 유비는 아니죠 욕을 했단 기록이 없습니다
유비는 유방보다 관대하고 덕이 많았단 거죠
적어도 겉으로는 유방보다 너그러웠습니다
그래서 민심을 얻을 수 있었죠 너그러웠기 때문에요
유비가 평원상으로 있을 때입니다
그의 한 수하가 유비를 우습게 보았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자신의 수장 노릇을 하냐며
자객을 보내 유비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렇게 자객이 찾아왔을 때 유비는 인재를 대하듯 합니다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고 함께 놀죠
다 놀고 나서 자객이 고백합니다
사실 유비를 죽이러 왔지만 좋은 사람이라 죽일 수 없다고
왜 그랬을까요?
자객의 눈에도 난세에 보기 드문 인물이었던 겁니다
첫째, 당시 유비는 수비장이라
백성의 땅을 지켰습니다
둘째로 유비는 가난을 구제했습니다
셋째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유비는 늘 동등하게 대했습니다
상대가 선비고 인재이면
유비는 같은 자리에 앉아 함께 밥을 먹었고
함께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맘을 얻은 거죠
네 번째는 유비에게 제왕의 복이 있단 겁니다
유비는 복이 많은 사람이죠
삼국 시대의 세 패자 중에서
유비와 손권은 복이 많은 편입니다
물론 손권이 가장 복이 많습니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가업을 물려받죠
그의 부친 손견, 형님 손책은 그를 위해 강산을 일궈 줬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남겨 줬죠
장소, 주유 모두 아주 충성스럽습니다
또 군웅이 할거하던 혼란한 시대에 살면서
손권은 전선에 직접 나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부하들이 다 알아서 해 줬죠 복이 많습니다
유비 역시 복이 많은 편이죠
왜 복이 많다고 하느냐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관우와 장비를 얻습니다
고대의 전쟁이든 현대의 기업 경영이든
가장 중요한 건 인재입니다 인재는 얻기 어렵죠
왜냐, 좋은 인재란 무릇 능력 있고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문제는 충성스러운 자는 무능하고 능력 있으면 충심이 없다는 거죠
다 겸비한 사람은 얻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유비는 나오자마자 인재를 둘씩이나 얻습니다
관우, 장비는 능력도 충심도 있죠 얼마나 복이 많습니까
하지만 유비의 운명은 순탄치 않고 굴곡이 많았습니다
그 오랫동안 싸웠지만 마땅한 땅 한 뼘 없었죠
게다가 군대도 없고 남에게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표와 유비가 술을 먹다 유비가 측간에 갔는데
돌아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표가 왜 우느냐고 물었죠
‘측간에서 고개를 숙여 보니 허벅지에 군살이 붙었더군요’
‘저는 평생 말을 타고 싸움을 하느라’
‘다리에 근육만 있지 군살이라곤 없었는데’
‘이 나이에 이룬 것 없이 군살이 붙어 눈물이 납니다’
건안 12년에 유비는 46세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고대 사람은 현대와는 다르죠
지금 46세면 한창이라고 하지만
고대에는 36세만 돼도 스스로 ‘노부’라 칭했죠
유비는 앞날이 암담했을 겁니다
되는 일은 없고 굴곡은 계속됐으니까요
유비가 그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며 노력했지만
업적을 이루지 못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유비에게는 영웅의 뜻, 영웅의 기개는 물론
영웅의 혼백, 의리가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영웅의 땅이 없었죠
용맹을 떨칠 공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그는 제왕의 명분, 기개 재주, 복이 있었지만
왜 제왕이 되지 못했느냐 성공의 길로 가지 못했기 때문이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정확한 노선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두 가지가 곧 생길 것입니다
왜냐 제갈량이 왔으니까요
제갈량은 땅을 얻게 해 주고 또 성공의 길을 알려 줍니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간 것은
유비에게는 행운이요 조조에게는 불행입니다
물론 개인의 역할을 너무 과장할 순 없습니다
그 이후의 정국은 복합적 원인이 작용했고
제갈량 혼자만의 공은 아니지만
그 시대에 이런 인재가 나온 건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유비와 제갈량입니다
당시의 유비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나면
발전의 길로 들어선 민영 기업입니다
약간의 자금, 경험 그리고 상품이 있지만
주력 상품과 영업 라인을 구축할 좋은 CEO가 없었던 겁니다
제갈량은 능력 있는 전문 경영인입니다
뛰어난 전문 경영인이지만
자기 자신은 산업과 기업이 없기 때문에
좋은 회사가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은 아주 절묘했습니다
고기가 물을 만난 거죠
이로써 두 사람의 만남은 천고에 전해질 미담이 됩니다
여기엔 문제가 하나 있죠
둘 중 누가 누구를 찾아갔을까요?
‘삼국지’와 ‘연의’에서는 유비가 삼고초려를 했다지만
‘위략’과 ‘구주춘추’에서는
제갈량이 제 발로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요?
유비가 삼고초려를 했을까요? 제갈량이 자신을 추천했을까요?
만약 삼고초려가 맞는다면
세 번 만에 만난 것일까요? 세 번 가서 세 번 만난 걸까요?
다음 편 ‘삼고초려’를 기대해 주십시오
삼고초려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에 의해 각색된 얘기죠
'삼국지'에는 딱 한 문장이 등장할 뿐
더 많은 사서에는 제갈량이 유비를 찾아갔다고 나옵니다
그럼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요? 삼고초려가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요?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 '삼고초려'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