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청두 무후사에
청대 사람 조번이 쓴 대련이 있습니다.
‘마음을 공격하면 적은 자멸할 것이니’
‘자고로 병법을 알면 전쟁을 즐기지 않았노라’
‘세력을 살피지 않으면 관대함과 엄격함이 소용없기에’
‘훗날 촉을 다시리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 대련은 완곡하게 제갈량을 비평한 것입니다.
유비 사후 유선을 보필할 때
무력을 남용해 전쟁을 일삼은 일을 비판한 거죠.
하지만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걸출한 군사전문가로 묘사됩니다.
선견지명으로 계략을 세우는 데 능한 인물로 나오죠.
다른 장수들은 꼭두각시처럼 시키는 대로 합니다.
멍청하게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주머니 속에서 계략이 적힌 문서를 꺼내 보고는
적힌 대로 한 겁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제갈량을 숭배하기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이중텐 교수는 제갈량이 뛰어난 정치가이긴 했지만
뛰어난 군사 전문가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성계나 동풍을 빌린 일은
문학가들이 제갈량을 미화한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이미지는 문학이미지와 다릅니다.
삼국 시대 인물중 관우에 대한 숭배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민간에서 신처럼 떠받드는 관우는
각종 업종의 개조로도 통합니다. (재조 : 한 종파의 원조가 되는 사람)
민간에서는 왜 관우를 이렇게 숭배하는 것일까요?
민간의 이런 현상에 대해 이중텐 교수는
과연 어떤 의견을 피력할까요?
지식인은 제갈량을 무척 숭배합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관우를 더 숭배하죠.
물론 관우는 존경받을 만합니다. – 관우 : 자는 운장 (160 – 219)
정과 의리의 사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관우의 가장 큰 특징이죠.
그가 조조의 포로가 된 이후
조조는 그를 극진히 예우하였습니다.
관우는 조조를 후하게 대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했지만
결코 유비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관우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조조와 유비중 한명를 택일해야 했던 것입니다
관우는 심사숙고한 후에
조조에게 보답하고 나서
유비에게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만큼 의를 중시한 겁니다.
관우가 떠날 때 조조도 넓은 도량을 보여 줬습니다.
장수중 한명이 관우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조는 반대했습니다.
관우 같은 의사를 존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민간에서는 관우의 정만을 생각하고
조조의 의는 잊고 있습니다.
관우가 이처럼 정과 의를 중했기에
민간에서 신처럼 숭배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간의 신앙도 때로는 납득 안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민간 신앙은 두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로 ‘수호전’과 ‘삼국지 연의’입니다.
문학사에서는 ‘홍루몽’의 영향력이 가장 큽니다.
‘홍루몽’을 중국 4대 고전 중 최고로 치지만
민간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은 ‘수호전’과 ‘삼국지연의’ 입니다
민간에선 이 두작품 속의 인물을 개조로 삼습니다.
강도들은 송강을 개조로 삼고
좀 도둑들은 시천을 개조로 떠받듭니다.
방직업자는 유비를 개조로 여깁니다.
도축업자는 장비를 개조로 모십니다.
홍루몽의 가보옥이나 왕희봉을 개조로 삼진 않죠
이런 것은 일리가 있지만
이발사가 관우를 개조로 삼은 것은 이상합니다.
관우는 이발사를 한적이 없쟎아요
게다가 후한시대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그냥 길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발사와 관우의 공통점은
손에 칼을 들고 있단 것뿐이죠.
하지만 관우의 칼은 살인을 하기 위한 것이지 이발하려던 게 아닙니다.
청대의 한 이발소에 걸려있던 대련은
관우의 말투와 비슷합니다.
‘내 칼솜씨를보면 천하에 있는 사람들의 머리수를 알 수 있다’
그런 글을 보고 누가 이발소에 들어갈까요?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관우가 재신이 된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갑니다.
각종 큰 사업자이나 상점에 들어가 보면
관우의 상을 모셔 둔 걸 볼 수 있죠.
장군출신인 관우를 전신으로 모시면 모를까
왜 재신으로 모실까요?
부는 남의 것을 빼았는 것을 통해 이룬다는 의미일까요?
제가 보기에
관우는 언젠가는 사랑의 신이 돼서
결혼정보업체에서 모시게 될 겁니다.
왜 일까요?
관우는 사랑에 대해서도 집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유비가 그를 데리고 조조에게 의탁했을 당시
조조는 여포와 전쟁을 하려고 했죠.
관우는 전쟁전에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조조를 위해 열심히 전쟁에 임하는 대신
전승 후에 한 여인과 혼인시켜 달라고 한 겁니다.
조조는 승낙했습니다.
유비도 옆에서 거들었죠
전쟁 전 날 관우는 약속을 지키라고
조조에게 재차 당부합니다.
전쟁후에 꼭 그 여인과 혼인시켜 달라고
조조는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어떤 여인이기에 관우의 마음을 빼앗았는지 가 보기로 하죠
그 여인을 보니 과연 경국지색이었습니다.
결국 조조가 그 여인을 먼저 차지합니다.
관우는 몹시 좌절합니다.
조조는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공로를 빼았깁니다.
어떤 공로를 빼았겼을까요?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에게 공성계의 특허권을 빼앗긴 겁니다.
공성계는 정말 있었던 일이지만
제갈량의 지략이 아니라 조조의 지략이었던 겁니다.
조조가 여포와 전쟁을 벌일 때
조조의 군대가 밀을 거두러 간 사이
갑자기 여포의 군대가 들이 닥칩니다
다급해진 조조는 병사들의 가솔들을
성벽으로 이동시켜 보초를 서게 합니다.
여포가 보니 성안에서 연회라도 여는 듯
노랫소리가 흘러나온 겁니다.
또 성 밖에 있는 숲속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여포는 생각했죠. ‘조조 요 놈!’
정말 교활하기 그지 없구나.
‘병사들을 숲속에 매복시킨 게 분명해’
‘후퇴해야겠다’
하지만 후퇴한 다음에 억울한 생각이 들어
다음 날 또 진격합니다.
이번엔 조조가 정말 병사들을 솦 속에 매복시켰죠.
역사적으로 공성계는 실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갈량이 아닌 조조의 계략이었습니다
이중텐 교수의 분석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삼국역사가 있으며 – 서로 다른 시기마다 평가가 엇갈린다
서로 다른 각도에서 삼국시대의 인물을 평가한 단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작품
마다 묘사가 서로 다르다.
이에 공성계의 주인공이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럼 현대인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국시대의 역사를 봐야 할 까요?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역사에는 세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역사이미지와 문학이미지 민간이미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를 봐야 할까요 ?
제 사견으로는 우선 가장 먼저
역사의 본래 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
즉, 역사 이미지를 알아야 한단 겁니다.
삼국 시대를 알려면 ‘삼국지’를 읽어야 합니다.
‘삼국지’의 저자는 ‘진수’입니다,
진수는 지금의 쓰췬성 난충시 사람입니다.
진수가 삼국지를 완성한 시기는
서진이 중국을 통일한 지 5년 후입니다.
바로 전에 있엇던 일을 기록한 겁니다.
또 진수는 엄격하게 학문을 연구했기에
자신이 수집한 자료 중에서 의심이 가는 내용은
일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기록한 내용은 믿을 만합니다
하지만 진수가 이처럼 내용을 취사선별 했기 때문에
‘삼국지’의 내용은 너무 간략해서
그다지 흥미진지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130년이 지난 후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을 달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서에 주석을 달때는
주로 해석위주로 기록합니다.
명사나 동사의 해석, 혹은 시대적인 배경을 추가하는 것이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배송지의 주석은 독특합니다.
그는 진수가 기록하지 않은 내용이나
진수가 ‘삼국지’를 쓸 때 알지 못했던 내용을
보충해서 기록했습니다 .
보충할 때 배송지도 취사선택을 했습니다.
그가 생각히기에 의심이 가는 내용의 뒷부분에
설명을 추가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믿을 만하지 못하다’
‘이 부분은 의심이 가는데 이유는 무엇 때문이다.’
서로 모순되는 몇 개의 내용은
다 같이 나열해서 기록했습니다.
독자의 판단에 맡긴 겁니다.
배송지의 주석도 비교적 믿을 만합니다 .
따라서 삼국시대 역사의 본래 모습 즉, 역사 이미지를 알려면
이 두 저서,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의 주석인 ‘배송지주’을 알아야 합니다.
이중텐 교수는 삼국시대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주’를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학 이미지와 역사이미지는
유래가 깊고 널리 퍼졌으며 영향력도 강합니다.
많은 이미지와 관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어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중텐 교수는 삼국시대의 문학 이미지와 민간 이미지를
부정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문학이미지와 민간이미지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공성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첸중수 선생은 공성계를
속이지 않으면서 속이는 전략이라고 했죠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서 상대를 속이는 겁니다.
제갈량은 병사가 없었습니다.
병사가 전혀 없다고 분명히 말했어요.
하지만 상대방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했는데도 사마의는 믿지 않았죠
속이지 않고도 속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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